알룬
 
작성일 : 17-12-09 05:57
[중남미야구] 아버지로로봇이 아니야터 버림받은 소년
 글쓴이 : 미러월드341
조회 : 1,921  

<중남미야구 시리즈>


칼로스 코레아 시니어의 가르침 https://www.ilbe.com/10156699174


호세 카노가 아들 로빈슨에게 https://www.ilbe.com/10156620654


베네수엘라 선수들의 눈물 https://www.ilbe.com/10156573928

















때는 1990년 베네수엘라.


빈부격차는 심했고 실업률도 9% 이상이었다. (지금 한국 실업률이 3%)


사람들은 직장을 찾아 대도시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후진국에서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사람들은 피임을 하지 않고 섹스를 했다.




일다 디아스(Yilda Diaz)는 페레스(Perez)라는 이름의 남자와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아들의 이름은 살바도르(Salvador)였다. 애칭은 살비(Salvy)


하지만 남편은 일다와 어린 아들을 팽개쳐놓고 도망가버렸다. 일다는 남편의 행방을 찾을 수 없었다.


일다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고달픈 미혼모의 삶이었다.




살비가 8살 되던 해, 베네수엘라에서는 우고 차베스가 새 대통령이 되었다.


빈민들은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기뻐했고 중산층은 차베스 정권의 미래를 우려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누가 되든 일다에게 삶은 여전히 고달픈 것이었다.


미혼모로서 생활비를 벌고 아들을 키우는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일이 힘에 겨웠던 일다는 친정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하여 일다와 살비는 베네수엘라에서 3번째로 큰 도시 발렌시아(Valencia)로 이사하게 된다.




duracion-de-vuelos-desde-bogota-hacia-valencia-venezuela.jpg


빈부격차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발렌시아의 조감도








일다는 자기 어머니 카르멘 디아스와 함께 빵집을 세웠다. 정신없이 일했다.


특별히 좋은 제빵 기계가 있을 리 없었다. 새벽부터 밀가루를 반죽하고 밤늦게까지 재고를 남기지 않기 위해 빵을 팔았다.


그러다보니 일다는 아버지도 없는 집안에서 아들이 삐뚜르게 자랄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살비를 동네 유소년야구 클럽에 보내기로 했다.




다행히 살비는 어깨가 남달리 강했다. 순발력도 있었다. 유소년 야구에서 투수로 활약하게 되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었다. 살비는 공을 던지는 것보다 공을 잡아내는 것이 더 재미있다는 것이다.


'플레이하고 싶은대로 플레이하라'가 중남미야구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은 살비를 유격수로 돌렸다.




그러나 '캐칭성애자' 살비는 더 빠른 공을 잡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아예 포수가 되기로 했다.


감독은 약간 난감해했다. 오랫동안 앉아서 플레이하는 포수를 하다보면 살비의 강점인 순발력이 무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살비는 소원대로 포수가 되었다.




profile1_1447091010.jpg


청소년 시절의 살비 








열심히 일하는 어머니와 할머니 덕분에 살비는 배를 곯지 않았다.


10대가 되면서 살비는 또래 소년들 중에서 가장 덩치가 큰 소년이었다.


그러다가 마침 이웃 도시 마라카이(Maracay)의 야구팀이 발렌시아로 원정을 왔다.


마라카이 팀에는 유난히 체격이 왜소한 소년이 있었다. 


살비는 그가 자기보다 어릴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자기와 동갑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꼬맹이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살비는 '정말 잘하는구나. 저런 사람들이 프로가 되는 거겠지?'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은 그 작은 선수도 살비에 대해 "덩치도 크고 정말 잘하는군. 저런 놈이 프로가 되겠지?"하고 생각했더라는 것이다.






살비는 다름아닌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포수 살바도르 페레스.


마라카이에서 온 작은 소년은 휴스톤 애스트로스의 2루수 호세 알투베였다.


100750b.jpg












한편 차베스의 집권 초기에는 기존 경제인들의 반발이 심했다.


사회주의 정권에 두려움을 느낀 외국 자본이 빠져나가는 사태도 발생했다.


그래서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졌다. 2003년경에는 실업률이 16%에 달했다.


식료품 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역운지하고 있었고 일다의 빵집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어머니의 고생을 목격했던 살바도르는 반드시 야구로 성공하여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겠다고 다짐했다.




다행히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베네수엘라에는 아직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터들이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온다 그러면 살바도르의 손에도 더욱 힘이 들어갔다.


포수 한 우물을 파기로 결심한 살바도르는 포수에게 필요한 모든 기술을 익혔다.


그 중에서도 미국인들은 살바도르의 강한 어깨와 폭투를 몸으로 막아내는 순발력에 주목했다.




2006년, 우고 차베스는 볼리바르 사회주의 혁명을 내걸고 본격적인 포퓰리즘 정책을 전개한다.


하지만 정부가 복지정책을 강화한다고 한들 영세한 자영업자이며 정치활동도 하지 않은 미혼모 일다에게 해당되는 사항은 별로 없었다.


일다는 여전히 고달픈 생활을 했고 언론에서 '모두가 잘 사는 세상' 운운하든 말든 살바도르의 꿈 또한 바뀌지 않았다.


살바도르는 "내 야구 인생은 어머니를 위한 거야"라고 결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C_mPlwsWAAIWTTH.jpg














그 2006년, 살바도르가 16세 되던 해, 캔자스 시티 로얄스에서 접촉해왔다.


청운의 꿈을 안고, 그리고 어머니를 불안한 고국에 남겨두고, 살바도르는 미국으로 떠났다.




영화 Sugar(https://www.ilbe.com/10140290270)에서처럼 살바도르는 낯선땅에서 오로지 밥먹고 야구만 하는 생활을 시작했다.


포수는 한명 밖에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포지션에 비해 기회가 더 적었다. 하지만 살바도르는 지레 낙심하는 청소년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고 부족함을 고치다보면 자연히 기회가 올 거라 생각했다.




포수로서 살바도로의 큰 약점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살바도르는 연습 때 투수들을 따라다니며 그들과 가깝게 지내려고 했다. 그렇게 친분을 다져두면 서로 대화하기도 편하고 어떤 공을 던지고 싶어하는지도 빨리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눌한 영어로 먼저 말을 거는 살바도르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었다. 투수들도 살바도르의 강한 어깨와 순발력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바운드 되는 공을 몸으로 막는 기술이 좋기 때문에 살바도르에게는 뚝 떨어지는 변화구를 마음놓고 던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hqdefault (2).jpg


땡볕 아래서 블로킹을 연습하는 살바도르와 다른 포수들.










영화 Sugar에서는 주인공이 미국인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스스로 왕따가 되고 야구를 그만두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하지만 살바도르는 정반대였다. 그는 인종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모든 팀메이트들과 잘 지냈다. 그리고 자신과 팀메이트 사이의 벽을 허물기 위해 항상 자기가 먼저 다가가 익살을 떨었다. 미국인 코치들도 그를 좋아했다. 그의 준수한 타격(스스로의 빠따질로 20홈런, 70타점 이상을 벌어들일 수 있다), ㅆㅅㅌㅊ 도루 저지 능력, 블로킹 능력 이외에 친화력이야말로 그의 가장 큰 자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언어장벽은 살바도르의 원대한 꿈을 막지 못했다. 


RoyalsPerezExtension 0376 3-1-16 JFS.jpg


DSC9807_ggxdygk3_jhei5kqc.jpgsalvy cain.JPG














열심히 하는 사람은 반드시 누군가가 지켜보는 법이다. 살바도르가 2011년 메이저리그에 처음 올라갔을 때의 일이다. 메이저리거들 틈에 끼어 긴장한 살바도르에게 한 청년이 다가와서 영어로 말을 걸었다.


"이봐 소년!(Nino!) 넌 잘하고 있어. 넌 더 잘할 거라고!"




그는 트리플A에서 살바도르를 눈여겨보던 선수였다. 체격으로 말하자면 살바도르도 193cm의 장신이었지만 그 미국인은 살바도르를 니뇨(소년)라 불렀다. 알고 보니 그 미국인은 살바도르보다 한살 위였고 어머니가 쿠바계 미국인이었다. 그가 바로 현 캔자스시티 로얄스의 1루수 에릭 호즈머였다. 그리고 살바도르와 호즈머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다. 주로 살바도르가 코믹한 짓을 하고 호즈머가 놀리는 입장이지만.




호즈머는 살바도르를 소년이라 부른 이유에 대해 "살비는 말하는 게 소년 같잖아요. 그리고 살비는 (트리플A에서) 처음 보던 순간부터 오늘보다 내일 더 잘 하는 소년 같다고 생각했어요"고 설명했다. 


나중에 살바도르는 players weekend에 자신의 별명으로 호즈머가 붙여준 El Nino를 선택한다. 호즈머는 자신의 별명으로 살바도르가 자신을 부를 때 쓰는 papo('바보'가 아님. 스페인어로 '형'이라는 뜻)를 선택한다. 이 둘은 현재의 캔자스시티에 빠질 수 없는 기둥들이다.


BD8E4856.jpg
















2011년부터 베네수엘라의 경제난 이야기가 솔솔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홀어머니를 고국에 남겨두고 온 살바도르는 애가 탔다. 그러다가 2011년 8월부터 그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게 되었다. 39시합에만 출전했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엄청난 도루 저지 능력의 편린을 보이며 캔자스시티 로열스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나자 관계자들은 살바도르를 불렀다. 7백만불 5년 계약을 맺고 싶다고 했다. 스몰마켓 캔자스시티 입장에서는 상당히 통큰 투자였다.




살바도르는 협상이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무조건 예쓰! 예쓰! 였다. 다만 한가지 조건을 붙였다. "어머니를 미국에 데려오도록 해주십시오."


구단은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하여 일다는 생전처름 비행기를 타고 미국땅을 밟게 되었다. 아들은 베네수엘라와 기후가 비슷한 플로리다 웨스톤(Weston)시에 저택을 구입해놓았다. 












야디 몰리나에 비견될 정도의 살바도르 페레스의 강견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IRcatoQDGGI" frameborder="0" 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mozallowfullscreen" msallowfullscreen="msallowfullscreen" oallowfullscreen="oallowfullscreen" webkitallowfullscreen="webkitallowfullscreen"></iframe>




하지만 포수는 늘 부상 위험이 따라다니는 포지션이다. 육체의 고통을 견디며 팀을 지탱하는 살비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https://www.youtube.com/embed/976POuihIhY" frameborder="0" allowfullscreen mozallowfullscreen="mozallowfullscreen" msallowfullscreen="msallowfullscreen" oallowfullscreen="oallowfullscreen" webkitallowfullscreen="webkitallowfullscreen"></iframe>







하지만 살바도르의 효도 스토리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그는 올스타게임에 어머니를 초청했고 2015년 월드시리즈 우승의 순간에도 어머니를 초청했다. 살바도르는 2015년 월드시리즈 MVP에도 선정되었다. 그는 모든 공을 어머니에게 돌렸다.


RoyalsSalvyMom 0020 5-4-16 JFS.jpg


모전자전. 정말 닮았다 ㅎㅎ








그리고 Players Weekend에서 살바도르는 특별 감사 메세지를 쓰는 란에 이렇게 적었다.


(http://m.royals.mlb.com/news/article/250355090/royals-explain-players-weekend-nicknames)




Gracias Dios y Mama, My mom means everything to me. I thank her every day."


주님, 그리고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내 인생의 모든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매일 감사하고 있습니다.


family1_1447091108.jpg




일다와 살바도르를 팽개쳤던 그 페레스씨는 지금쯤 무얼 하고 있을까? 하지만 그는 감히 살바도르 모자 앞에 나서지 못할 것이다.






























한편 베네수엘라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한국에서도 아버지가 부인과 자식을 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런데 이 아버지가 돈을 좀 만지게 되자 자식은 지금까지 자기를 키워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를 선택했다.


좀 많이 좃같은 이야기이긴 한데, 전라도 집안에서는 오히려 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구체적인 논평은 삼가기로 했다.


img_20140825101546_9fe878b8.jpg




끝.





팔레스타인 대설 보이콧

 
   
 

×